나의 카메라 편력기
요즘 통 사진을 못찍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괜시리 지름에 대한 욕구만 증가한다. 지름신을 물리치기 위해 내가 했던 방만한 행동에 대해 다시금 채찍질 하려고 그동안 카메라 편력에 대해 정리해봄.
첫번째 디카가 소니 707이었나 하고 고민해보니 나에게 더 오래전에 디카가 한대 있었다. 삼성 SDC-80이란 모델.
바로 요놈. NEXCA라는 별칭을 갖고 있었는데, 640x480의 경이적인 해상도에 가격은 40만원 정도였다.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놈. 화질은 그래도 좋았다. 디지털로 사진을 찍는게 어딘가... 지금 이놈이 어딨을까 심히 궁금. 예전에 인터넷 매거진 만든다고 학보사 후배놈에게 빌려줬는데, 그 친구가 고이 간직하고 있을까?
두번째 디카. 2001년에 구매. 사진을 별로 찍을 생각도, 찍고자 하는 열정도 없었는데, 아주 친한 친구놈이 사진 하겠다고 나서는 바람에 뽐뿌받아 지름. 원래 특이한 모양새의 기구들을 좋아하는 지라 아이오브 비홀더란 영화에 나온다고 굳게 믿고 이놈으로 질렀다. 그 영화에 505가 나오는 줄 알았는데, 지금에서야 자세히 보니 라이카쯤으로 보이는 망원경을 착각 한듯... 다시 영화를 빌려봐야겠다.
암튼 707과 보낸 시간은 대체로 매우 즐거웠다. 디카라는 걸로 무지하게 난사했었고, 나름 작품한다고 돌아댕겼다. 2002년 월드컵 할 때까지는 함께 했지. 아니다. 슬픈 시간도 있었다. 내가 사용한 707이 두대였는데, 한대 도둑맞고 끙끙대다 다시 구입. 눈물의 세월을 보낸 적도 있었군...
사진출처 : 월하독작님 블로그
가만. 그러고 보니 디카가 첫 카메라는 아니다. 아부지가 사진을 좀 하셔서(군대 사진병출신) 집에 필카가 몇대 있었다. 사진이 유행이기 전에 몇번 만져보긴 했었다. 아주 튼튼한 펜탁스SP가 있다. 노출계가 망가져서 뇌출계를 써야 하긴 하지만 정말 쨍한 45mm 렌즈가 보여주는 세상이란 참... 말로 할 수 없었지.
707을 갖고 놀던 시절 필카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클래식으로 총칭되는 구제품들에 눈돌아가기 시작. 그래서 올림푸스 Pen EE3를 질렀다. 한장의 필름에 2장을 찍는 지라(하프 카메라다) 36방짜리 필름을 넣으면 72장을 찍을 수 있다. 캐논도 이런 하프카메라가 있었고, 아부지 소식 시절 수학여행때 갖고가면 너끈한 놈이었다고 하신다.
슬슬 지름신 내림을 받기 시작하면 이제 SLR에 목숨걸게 된다. 소위 아웃포커싱이란 놈에게 매달리는데, DSLR쪽을 구경하기 시작. 2002 월드컵을 기점으로 DSLR 유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본인도 발을 담그게 됐다. 처음엔 캐논 D60을 기다리다 목이빠져버려 니콘이 먼저 들어오는 바람에 D100을 질렀다. 당시 가격 330만원 정도인데, 현재는 30만원 받기도 힘든 바디...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진다. 흑흑.
하지만 아직도 충실히 제 몫은 해낸다. 이젠 아쉬운 화질과 오바된 컨트라스트는 불만이지만 뭐 그래도 그렇저럭 버틸 수 있다. 니콘서 풀프레임이 나오는 날 퇴역하겠지만 그때까진 버텨주겠지. 니콩은 참... 사람 지치게 한다. 5D가 눈에 밟히지만 애증 때문에 기다릴란다.
DSLR에 입문해서 여러 렌즈를 써보면서 싫증 날 때 쯤 점점 필카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아 여기서 의견 한가지, SLR을 쓰는 사람들 대부분이 표준으로 시작해서 망원, 광각의 순으로 변환하는데, 망원은 거의 쓸일 없다. 좋은 표준, 광각 그리고 85미리 정도 하나 구비하면 장땡.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렌즈는 니콘 85mm F1.4와 캐논에서는 85mm F1.2
좀 다른 카메라 없을까 고민하다가 SX-70과 로모를 질러버린다. 이건 모두 충동. 그냥 예쁘다는 이유만으로 간간히 쓰긴 하는데, SX-70은 전용 필름이 단종된 이후로 잘 안쓰고 로모는 나사가 빠져 관절염으로 은퇴했다(고쳐야 하는데...). SX-70은 다들 알겠지만 러브레터에 나온 것으로 유명한 명기, 폴라로이드계의 SLR이다. 요새 나오는 700이나 600 계열 필름을 쓸 수 있지만 조금 누르끼리 하고 SX-70 전용 필름에서 나오는 푸르스름한 느낌이 안들어서 불만이다.
자자 이쯤되면 갈때까지 갔다. 다 써봤다고 생각할 즘에는 중형에 눈돌아간다. 젠자 브로니카를 쳐다보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내 손에 들어온건
핫셀 503 cxi. 결혼식때나 볼 수 있는 120/220 중형 필름을 쓰는 제품이다. 6x6 포맷. 참으로 션한 파인더와 사진으로 한없이 가슴뛰게 만드는 카메라다. 사진을 좀 해본다면 언젠가 이 제품을 꼭 써보길...
503 cxi와의 사랑이 식어갈 무렵 눈에 띈 것은 파노라마 카메라. 어흥 카메라도 있지만 내 마음에 든 건 xpan이다. 후지 TX-1과 쌍둥이지만 핫셀로 마무리된 검정 바디는 사랑스럽다(후지의 샴페인 골드도 참 예쁘다).
어떤 사진을 찍을 수 있냐면 필름 2장을 한장으로 찍을 수 있다. 36방 필름에 19방정도 사진을 박는다. 파노라마 모드가 아닌 노멀 모드로는 일반 카메라처럼 쓸 수 있다. 가로로 긴 정말 션~한 사진을 안겨주는 기종. 어떤 카메라를 제일 좋아하냐고 묻는 다면 당연 xpan이다. 만일 내가 테크노라마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러시아제 Kiev 4도 갖고 있는데, 콘탁스 카피 제품이다. 이래뵈도 나이가 나보다 많다. 성능은 좋은데, 이따금씩 빛이 샌다. 아~아~주 가끔 쓴다.
특이한 카메라에 대한 갈망은 요놈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바로 NPC Polaroid. 자바라가 있어 주욱 댕겨야 사진찍을 자세가 된다. 3x5 정도 사이즈의 사진을 폴라로이드로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폴라로이드 180 구형 카메라를 구입하려 했는데, 좋은 물건이 없어서 이놈을 대신 사게 됐다. 정말 맘에 드는 폴라로이드를 품을 수 있다. 다만 부피가 커서 좀 거추장스럽다.
똑딱이 기종으로 소니의 M1을 쓴다. 대체로 블로깅에서 쓰는 사진은 이놈으로 찍은 것이다. 회전형 몸체가 참 매력적인데, 요새 이놈도 관절염에 걸려 후덜덜... 동영상도 간편하게 찍을 수 있어 만족하는데 요즘엔 산요 작티가 눈에 밟힌다. 이럼 안되는데... 흑
자꾸 주인이 충동질을 못이기고 있어서인지, 전날밤 카메라 구경을 해서 삐졌는지, 그저께 D100이 자살 소동을 벌렸다. 1m 높이 가방안에서 뛰어내렸다. 근데 왜 85까지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건지... 렌즈가 땅을 향해 떨어졌는데, 불행중 다행(?)인지 UV만 박살났다. 85 렌즈 바디가 좀 긁히긴 했으나 기능상으로는 정상이네...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림.
미안하다. 이젠 아빠가 바람 안피울께~ 같이 오래오래 살자꾸나~